71세 소년, 오랜 가출을 끝내다

“저 형들따라서 한달만 피해있다가 와라.”


열네살 까까머리 소년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말씀이 의아했지만 요즘 동네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해서 그래야 하는 알았다. 아버지가 주신 한말을 짊어지고 그날 동네 형들을 따라나섰고 밤에는 인민군을 피해, 낮에는 미군쌕쌕이 폭격을 피해 조밭에 몸을 숨기며 조금씩 바다로 향했고 다음다음날 강화도 교동에 닿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기약했던 한달은 어느새 57년이 지났지만,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아빠, 엄마, 동생들, 그리고 동네 동무들. 모두가 소년의 추억속에서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도 강화도 교동에 가면 고향을 떠나올 배를 탔던 곳이 저만치 손에 잡힐 하다. 거기서 다시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고향 초가집까지는 고작 30리다. 꿈에도 차마 잊을 없었던 , 황해도 연백군 봉북면 풍양리 수무리마을. 그곳을 57년동안 마음속에 새겨놓은 발만 동동구르며 살아왔다.


생각할 수록 기가막힌 노릇이다. 57년짜리 한달이라니…


어느새 노인이 버린 소년, 오늘따라 무척 긴장한 모습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어젯밤 집에 서울 사는 아들녀석과 함께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내에게전화하마인사하고 아들 차에 몸을 실었다. 2경인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길이 막힌다. ‘2시까지 있을까. 일찍 나올 그랬어.’ 도착시간에 맞출 있을 걱정이다.


아니, 근데 달랑 혼자만 나왔어요? 열네살이면 군대에 끌려가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뭐가 걱정된다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피신시켰을까.”


회사까지 휴가를 내고 아버지 배웅길에 나섰으니 기특하고 고맙긴 한데, 나이 마흔을 넘겼는데도 노인에겐 아들 녀석이 철없긴 여전하다.


마을 사람들이 무슨 교육인가를 받으러 가는 도중에 몇몇 사람들이 도망을 쳤대. 그래서 인민군들이 우리 동네 가만안둔다고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지. 그래서 할아버지가 덜컥 겁이 났던가 보다. 가까운 강화도에 한달만 피해있겠다며 밤길 떠나는 동네 청년들 손에 나를 맡겼던 게지.”


사실 정확한 정황은 소년도 모른다. 그렇게해서 집을 나섰고,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밖에는. 그리고 집을 떠난 그날이 815 밤이었다는 , 많이 더웠다는 , 가는 길에 인민군을 만나 급하게 논두렁에 몸을 숨겼던 ,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하루내내 조밭에 숨어있어야 했던 , 조밭에서 피난가던 다른 마을 어른들을 만난 , 그렇게 모두 바닷가에 닿았을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피난민들의 모습 . 아련하게 그때 일이 눈앞을 스친다.


소년의 고향은 전형적인 시골마을. 소년의 집도 농사를 지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남쪽땅이었다. 북쪽으로 20리만 가면 삼팔선이었다. 바로 아래 여동생과는 한살터울이었고, 아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두살밖에 안된 막내 동생도 하나 있었다. 그렇게 네명의 동생들,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엄마, 아빠 얼굴은 기억이 나요?” 아들 녀석이 묻는다. ‘아버지, 어머니. 그래, 생각난다. 아니, 또렷하다. 꿈에도 잊지 못한 얼굴이다.’


친구들은요, 학교 선생님은 생각나요?” 소년을 닮아 무뚝뚝한 아들 녀석이 오늘따라 말이 많다. 그래도 덕분에 예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쟁이 터진 중학교 입학하고 한달도 안되서다. 그때는 입학이 6월이었던 같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선생님은 생각이 안난다. 동네 친구들도 생각난다.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남아있다. 소년만 유별나게 혼자서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 때문에…”


전쟁이 나고 석달만에 미군과 국군이 치고 올라왔고, 다시 겨울에 중공군에 밀려 내려갔다. 다시 미군과 국군이 올라왔다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한 대치를 계속했다. 지금도 대포소리가 귀에 선하다.


대포소리에 익숙해질 때쯤 고향을 떠났고, 그것이 57 가출의 시작이었다. 강화도에서 머슴 노릇하다가, 일사후퇴때 먼저 피난왔던 삼촌과 사촌 동생을 만나 서울로 옮겨왔다. 삼촌은 엿공장에 다녔고, 소년은 8군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빨래도 하고, 구두도 닦으면서.

그러다 어느날 휴전소식을 들었다. 전쟁이 끝났단다. 그럼 집에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군대를 갔다 다시 인천에 내려왔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손자까지 지금도 인천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나온 세월을 되새기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 고성 대명리조트. 시계를 보니 210, 지각이다. 적십자 요원들이 차가 서자마자 달려와 내리는 소년과 아들을 도와준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 생각말고 얼굴이나 제대로 보고 오자. 언제 보겠누, 녀석들을


동생들이 모두 살아있답니다. 만나시겠습니까?” 적십자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려니 걱정이었다. ‘살아있는 알았으면 됐지, 이제와 만나면 뭐하누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들 녀석에게도 얘기를 했었다. 안만나겠다고.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리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역시 돌아가셨단다. 동생들은 살아있다는데, 사실 너무 어려 헤어져서 얼굴도 기억이 안난다. 같이 것도 아니어서, 혈육의 정이라는 것도 못느끼겠고.


그러지 말고 만나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이라도 받아와야죠. 사진으로라도 엄마, 아빠 만나셔야죠.”


말에 노인이 소년은 결심을 했다. ‘그래, 사진으로라도 만나야지.’ 그래도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물었다. “괜히 남쪽으로 도망간 가족이 있다는 알려지면 동생들 불이익 당하지 않을까. 돈을 줘야 한다는데 얼마나 줘야 하나. 우리 형편도 지금 어려운 데… 돈을 줘도 저쪽에서 뺏어간다던데…


직접 것도 아니고, 그렇다더라 하는 얘기만으로 동생들을 안만난다는 말이되나요. 돈이 든다 한들 60년만에 동생만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아들 녀석은 속도 모르고 핀잔을 준다. ‘고얀 노인이  소년, 속으로 야단친다. 


사실, 만나면 뭐하나 하는 생각도 여전히 남아있긴하다. 하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래 어쩔 없는 노릇이다. 녀석들을 만나봐야지. 제대로 먹고는 사는지. 처음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일흔한살 소년의 기나긴 가출이 끝나려 한다. 2007년 10월19일, 내일이면 동생들을 만난다. 57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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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사람들 많네. 아직 늦지 않은 거지… 소년은 늘 걱정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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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증을 어디 뒀더라. 막상 와 보니 더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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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315-XXXXXXX. 동생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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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앞으로 일정표구요, 이건 오늘밤 묵으실 숙소 번호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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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가까이 묵은 선물들이 바리바리 쌓여있다. “라면도 좀 사서 넣을 걸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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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룻밤도 같이 못자는 구만. 따로 만나는 시간이 딱 2시간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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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장에 들어가는 소년. “뭐, 교육이란 게 뻔하지, 이런말 하지마라,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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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가 어딘가,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건가. 소년의 가출이 이제 막 끝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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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리조트 2층 239호. 소년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금강산으로 떠난다. 동생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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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두고 돌아오는 아들의 발걸음은 착잡하다. “오랜 간절함이 풀리면 노인네들 그때부터 병난다던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대로 눈을 감으셨을까. 아들을 떠나보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채 그 오랜 세월을 어찌 사셨을까.”, “아, 날씨는 왜 이런가…”

“71세 소년, 오랜 가출을 끝내다”에 대한 2개의 댓글

  1. 아~ 감격스러운 일이군요. 아버님께서 건강하게 잘 고향에 다녀오셨길 바랍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는 625 때 북한으로 가셨대요. 외할머니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시지만, 어째 울 엄마는 아빠가 안 보고 싶은가 보더군요.

    @.@ 그래서 제가 한 번 나서볼까하는 생각도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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