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의 안철수가 말하는 안철수연구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백컨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10년넘게 기자생활을 했지만 안철수연구소만큼 애착이 가는 기업이 없다. 코흘리개 신입기자 시절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첫 출입처가 당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였고 그때부터 10년넘게 안철수연구소를 들락날락한 인연때문이다.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몰려있던 골목에 둥지를 튼 안철수연구소에서 김현숙, 최현주, 황미경, 고정한, 박준식 등을 만나던 때가 벌써 14년전이라니. 그렇게 5명인가 6명이 모여 출발한 안철수연구소가 지금은 국내 최대의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 우뚝섰다. 돈 많이 버는 회사보다 존경받는 기업으로 더 주목을 받고 있으니 더욱 자랑스럽다. 그래서일까. 안철수없는 안철수연구소를 상상하기 힘들 듯, 내겐 안철수연구소에서 만난 그 많은 얼굴들 없는 안철수연구소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다. 안철수연구소가 출발한 때부터 500여명의 직원이 땀흘리고 있는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안철수연구소의 ‘성공스토리’인 셈이다. 성공스토리류의 책들이 의례 기업을 설립한 대표나 경영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뜻밖에(!) 안철수가 아니다. 안철수를 포함해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한 직원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고비라 할 만한 사건과 사고가 담당직원들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된다. 에피소드마다 담당직원들의 실명이 하나하나 거론되는 형식은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책의 의도가 읽힌다.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사람은 바로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말이다.

에피소드 형식이어서 읽는 데 부담이 없다. 맘만 먹으면 몇시간만에 끝낼 수도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겨있는 안철수연구소 14년의 역사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스무살 맞은 ‘V3’에 보내는 축사

“2008년이 V3가 개발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여서…”

안철수연구소 터줏대감 황미경 차장이 보낸 메일을 보고 순간허걱했다. ‘V3 벌써 20년이 됐다니.’ 마치 일인 마냥 감회가 새롭다. 20년전이면 1988,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 V3 만난 것도 20년이 흘렀다. 지독히도 오랜 인연이다. 당시를 돌이켜보니, 하드디스크도 없는 PC에도스(MS-DOS) 담긴 5.25인치 플로피디스켓을 넣어 부팅을 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디스켓통에 이런 저런 소프트웨어들을 복사(^^) 플로피디스켓을 빼곡히 담아놓고 애지중지하던 기억이 새롭다.



잠시 20년전 디스켓통을 뒤져보자. 앞줄에 도스가 담겨있다. PC 켜기 위한 열쇠같은 소프트웨어였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한메타자, 보석글, 로터스1-2-3, 디베이스 등등. 지금은 추억속의 이름들이 보인다. 대열에 V3 보인다. ‘씨브레인(C-Brain)’ 이후 컴퓨터 바이러스가 기세등등했던 시절이었고, 때문에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으로 V3 필수였다.



다시 돌아와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디스켓통속에 소중히 담겨있던 소프트웨어 중에 여전히 노트북에 살아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V3. 지독히도 질긴 생명력이다. 바이러스 잡다보니 면역력도 강해졌고 생명력까지 질겨진 모양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0년을 유지해온 브랜드는 드물다. 기억속의 브랜드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20년전 디스켓통속에 담겨있던 것들중에 지금까지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국산 소프트웨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시장을 호령하던 외국 소프트웨어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찾기 어렵다. 내가 애용하던 로터스원투쓰리, 디베이스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국내 소프트웨어 브랜드 가운데 20년을 버텨온 것이 있을까. 아무리 돌아봐도 V3 말고 찾을 수가 없다. , 아래한글이 있겠다.



사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0년을 살아남을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같은 일이다. 기적을 국내 브랜드가 만들어 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런 일이다. 채프먼이 <초난감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에 보면 소프트웨어 업계의 부침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다. 소프트레터라는 잡지가 매년 발표하는 PC 소프트웨어 부문 100 기업 목록을 비교한 내용인데, 1984년의 10′ 기업 목록을 보면 마이크로프로를 필두로 마이크로소프트, 로터스, 디지털리서치, 비지코프, 애시톤테이트, 피치트리, 마이크로포커스, 소프트웨어퍼블리싱, 브로드번드가 올라와 있다. 그리고 17년후인 2001 10′ 목록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기업만 빼고 모두 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살아남은 회사도 있지만, 살아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기억속에서 멀어져 있다. 그만큼 부침이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 소프트웨어 업계라는 얘기다.



국내 상황은 심하면 심했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V3 20년을 버텨왔다니 대단한 일이다. V3 브랜드가 살아남은 이상이다. 20년동안 한번도 대한민국 대표 소프트웨어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1995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돼 V3 본격적인 상용 제품으로 판매가 시작된 이래 기업의 성장세가 멈춘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신뢰할 있는 제품이었고 신뢰가 끊임없이 유지됐기 때문이지.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은 현지 토착 프로그램의 기득권이 매우 강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도 풍토병같아서 특정 지역의 주민들이 병을 제일 안다. 당연히 병에 대한 증상과 대처방안을 가장 아는 것은 지역 토착민들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도 지역의 오래된 의원을 찾아가지, 듣도보도 못한 외국 의사를 찾아가지 않는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렸을 , 사용자들이 V3 찾는 것은 당연했다. V3 외국 대형 바이러스 백신 기업들의 공세속에서도 가장 많이 애용된 이유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의 엄청난 확대로 컴퓨터 세상에지역 사라졌다. 바이러스의 풍토병적 성격이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바이러스 백신 시장도 당연히 글로벌 경쟁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V3로서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컴퓨터 사용자들은 V3 찾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V3 글로벌 바이러스 시대에도 변함없는 바이러스 퇴치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풍토병 전문의라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외국의 대형 기업들을 끊임없이 벤치마킹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글로벌 전문의로 거듭났다. 그동안 쌓았던 신뢰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순간의 방심으로 후발주자에게 선두를 빼앗긴다. 후발주자들은 기존 선두 제품의 약점을 파헤친다. 그리고 허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자만에 빠져 방심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후발주자에게 발목을 잡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은버전 3′ 되야 쓸만하다 시장의 속설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얕잡아보던 선두 업체들이 하나 뒤로 밀려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것이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그리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럴까. 그건 현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 고통과 괴로움 모두 날려버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허나, 다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산다면, 아쉬움없는 극락같은 인생이 펼쳐질까. 아닐 것이다. 새로운 아쉬움이 생길 것이고 새로운 고통이 시작될 것이다. 끊임없는 시간여행의 포로가 되는 밖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남자친구에게서 느닷없이 사귀자는 말을 들은 소녀가, 상황을 모면하고자 시간을 되돌린다. 말이 나오기 바로 전으로 돌아가 남자친구와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를 몇번이고 바꿔보지만, 결국 친구의 입에선우리 사귀어 보자 말이 나오고 만다. <타임머신II>에서도 주인공은 죽은 약혼녀를 살려보겠다고 과거로, 과거로 보지만 결국 다른 이유로 약혼녀는 죽고 만다.



시간을 되돌리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되돌린다는 자체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니, 어찌보면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충실하자.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영화 얘기를 빌려 V3 당부하고 말이다.



지금까지 해온대로라면 V3 거는 신뢰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 상황을 둘러 보면, 지나온 20 시간이 행복했을 만큼 힘들고 치열하다. V3 지금까지 보여준 사용자들의 신뢰는 가장 자산이다. 자산을 바탕으로 자만하지않고 현실에 충실하는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준다면 V3 미래는 흔들림이 없으리라 믿는다.



20년동안 내곁을 지켜준 V3 감사하며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앞으로 10년후에 30주년 기념 컬럼도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정말 좋겠다.

이글은 안철수연구소 온라인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안철수연구소는 창립 시절부터 출입했던 곳이어서 인연이 남다른 회사지요. 5명쯤 있을 때부터 들락날락했는데, 지금은 거대(?)기업이 돼 버렸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대한민국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해주길 바랍니다.